추워지면 뜨개질 핸드메이드

다이소에서 뜨개실을 샀다
뜨개실도 파는지 처음 알았다

반짝반짝한 수세미실부터
학생때 흔히 접하는 저렴한 아크릴실
실단계에서부터 이미 보풀보풀한 폴리실
수면양말에 느낌의 날개실과
두껍고 보들보들한 극세사실까지

규모가 큰 다이소에 가면 종류가 더 있지않을까
가격은 일괄 천원
그렇다고 질이 나빠보이진 않았다

보드라운 촉감
중학교때 처음 뜨개실을 만졌던 기억이 났다
그땐 참 시간이 느리게 갔었는데.

멍하니 실을 매만지다 그만





요로코롬 맘에 드는 실을 잔뜩 골라 찍은 후
(원래 매장에서 이러시면 안됨 마침 실 옆에 진열대가 비어 있어 슬쩍 찍었음)

파우더베이지만 세 볼 사왔다...
실은 일단 떠봐야 아는거니까?

사는 김에 바늘이랑 부자재도 몇개 질렀다







일단 실에 대해 간단히 리뷰하자면
소프트 뜨개실은 두께 7mm에 해당하는 엄청 굵은 극세사다.

이런 실을 흔히 우동사라고들 하는데 그래도 7mm는 진짜 대박 두꺼운 거다. 우동면발을 아무리 탱탱 불려도 저만치 두꺼워지긴 무리...




권장바늘은 대바늘 8-10mm라 되어있다.
둘다 써봤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다이소에 12mm까지 팔던데 빡빡하게 뜨는 사람들은 12mm로 해도 되지 싶다.

게이지는 메리야스뜨기로 7코 12단이고
10mm 바늘로 뜨니 7코 10단이 나왔다.

근데 막상 뜨기 시작하니 게이지 잰다고 떴을 때보다 더 길어지기도 했다.
이래서 두꺼운 실이 초보에게 추천되지 않는 걸지도...
3~4단쯤 떴을때 한번쯤 길이를 재보는 것이 나을듯





실의 질은 괜찮았다

뜨는 동안이나 다 뜨고 이리저리 만질 때도
털날림 먼지날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극세사야 어차피 합성섬유이니 함량 따질 것도 없고

이정도 저렴하면 땡큐지 싶다

앞면에는 전체 길이까지 안내되어 있다(15m).
꽤 친절하네, 근데 저게 긴걸까 짧은걸까 감이 안왔다.

그래서 무작정 세 볼을 사온 건데





한볼 다 떴을때의 모습이다
45코 잡아 메리야스 뜨기로 6단 떴을 때다

실컷 이런저런 실험을 해놓고
정작 뭘 뜰지는 정하지 못한채 막연히 목도리나 넥워머가 되겠거니 떠내려갔다





12단을 떴는데도 두볼째 실이 좀 남았다
아무래도 첫볼은 코잡기를 하느라 실이 더 많이 드는 듯하다
(45코 12단=860x130mm)

메리야스뜨기라 돌돌 말린다


그렇다면 아예 반 접어서





남은 실로 고리를 뜨고(4코 18단=55x240mm)


고리부분도 뒤집는게 더 이쁜데, 사진에서는 무심코 메리야스 무늬쪽이 보이게 했다.



미니 목도리로 만들어 보았다


동글동글 말린게 귀여우면서도
네키목도리같이 넘 어린이용처럼은 안보이는게 맘에 든다(그냥 내생각)


메리야스뜨기를 해서
그걸 굳이 뒷면으로 쓰고
거기다 세로로 사용해
얼핏 봐서는 저게 무슨 무늬지?
싶도록 보이는게 포인트.

대단한걸 하느라 애쓰긴 싫으면서도
너무 무난해보이고 싶진 않은
내 비뚤어진 심성을 잘 보여주는듯 하다
.
.
.
라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아무 신경 안쓰며 뜨는게 진짜 포인트다.



위에 온갖 실험 다 해놓고 뭔소리냐 싶겠지만
그렇게 머리쓰며 만들지 않았다고...

실 촉감 좋네 색도 이쁘다
무슨 방식으로 떠야 이 느낌이 제일 잘 살지?
정도는 생각한 것 같지만.


역시 핸드메이드의 포인트는
힐링이 되야 한다는 거니까.


찬바람이 불고
나중에 돌아봐도 생애 전환점으로 기억될
(사상 최악의 한해라도 봐도 좋을)
올 한해가 저물어간다.

올해 넘어온 ㅈㅇ같은 고개를
한땀 한땀 떠올리며
그래 고생 많았어 그만하면 잘 넘겼어
스스로 위로도 하고 칭찬도 하고

내년까지 이 사태가 연장되지 않으려면
남은 기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조금 묵직한 기분도 남기면서

내 안에 엉킨 무언가가
뜨개무늬처럼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찾은 기분으로

세상사 이 정도 보드랍기만 해도
더 바랄게 없을텐데
한숨도 좀 쉬고.

그러다보니 완성되었습니다
하는게 핸드메이드의 묘미 아닐까

저렴하게 실 사서
미니 목도리 하나 뜨고
이렇게 쓸 말이 많다니
이득 본 기분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소일거리를 되찾은듯
또 사러 가야지!
(아차 근데 한볼 남았...)

노래로 구원받는다는 것 별처럼 만난 사람들

피로에 지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난 밤. 나 홀로

루시드폴 노래를 듣다가

울었다

























기뻐서

























지난겨울 대구 콘서트에서 강을 들을 때였다

달걀껍데기 같은것이 나를 덮어주는 듯한 감각

아주 살짝 덮은거 같은데도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나지도 않는 갓난아기 시절

싸개이불에 단단히 싸매여 있을때

혹은 양수 속에서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은

























그때는 아 기분좋다 하는 정도였고

이후로도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네 했었지만


























이제는 알겠다

내 감정을 깨우고 어루만지는 노래는

날 보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해도 항상 원했었던

어쩌면 전 생에 걸쳐 쫓는 신기루 같던 것을

노래가 줄 수도 있다니

























그를 만난 것에

그의 노래를 겁없이 들을 수 있는 이 시절에 감사한다

이제는 안다

삶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는걸

아마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남은 삶에서 “지금”이 항상 그러하기를

감히 말해보는

그런 밤이다







주말, 오롯이 혼자 오늘은 뭐먹었니



아무도 없이 탁 트인 플로어

우아한 고전 팝

맞춤음료


완벽하다

사운드드로잉x조윤성-9/2 별처럼 만난 사람들

또 미숙한 짓을 저질렀다


오랜만에 윤성님 공연이 보고싶어 검색을 했는데
웬걸-가까운 시기에 네 개나 예정되어 있었다.

늘 이렇게 충동적으로 검색하지만
놀랍게도 공연이 있곤 해서
혼자 계시라도 받은 기분으로 좋아라 했었다.
(왕성히 활동하는 연주자의 팬이 된 축복일 뿐이지만)

행복한 고민을 하다
그냥 제일 가까이서 하는 공연을 예매했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 없었다ㅠㅜㅠㅠ

데이트 가는 기분으로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고
오늘은 또 윤성님이 피아노로 어떤 장난을 칠까
들뜬 마음으로 공연장을 향했다.

그런데 두 번째 곡까지 듣고
조금 아차 싶었던 것이
기획의도.

이 공연은 어떤 사진가의 작품과
그에 맞는 연주
라는 것으로
윤성님은 서너명의 연주자 중
가장 마지막 날 연주자였다.

분명 어떤 공연인지
알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윤성님 이름에 정신이 팔려
공연의 중점이
사진가와 그의 사진
일거라는 생각을 못한 것.

나는 분명 사진을 일종의 배경삼아
윤성님의 공연을 듣고 있는데
연주가 끝날 때마다
사진가의 멘트를 듣고 있자니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가의 말에 따르면
이번 연작 공연 모두를 보러온 관객도 있고
매년 사운드드로잉을 하고있다고 하니
그에게도 분명 고정층이 있다는 것데.

한마디로 윤성님의 연주를 듣기 위한 공연으로
이것을 택한 내가 바보라는 거다ㅠㅠㅜㅠ



물론 유리알처럼 푸르고 시린 사진을
윤성님의 피아노로 즉흥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충분히 즐거웠다.

다른 공연에서라면 조금 맛보았을 소리를
메인으로 실컷 들을 수 있었으니
어쩌면 꽤 귀한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치만 이럴줄 알았더라면
적어도 두 개는 예매했을텐데ㅠㅠㅜㅠ

다른 공연은 이미 다 지나갔다.
왜 다른걸 예매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걸까.
모두 같을리 없는데

바로 지금
이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있으면서
스멀스멀 후회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하나 더.
사진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짙고 투명하고 시린
북구의 정서였기에
윤성님의 연주 또한
여러 터치는 더해졌지만 계속해서 그런 분위기였는데
중간에 사진가가 윤성님에게
특정 곡명을 언급했을때는 좀 당황스러웠다.


윤성님이 메인일 때의 분위기가 아니긴 하지만
윤성님의 피아노는 시종일관

오늘 연주되어야 하는 것은 사진가의 작품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령 윤성님이 루시드 폴의 노래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처럼 말이다.
물론 폴과의 작업에서는 미리 논의가 오가겠지만
그는 여러 상황을 놀라울만치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즉흥연주 자체가 그에게 낯선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만큼 표현의 폭이 넓고 쉽게 자기 색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음대를 나왔다는 이 사진가는
대체 무슨 기준에서 윤성님을 섭외한 걸까.

즉흥연주를 하고있는 사람에게
공연도중 곡명을 말하는건
사진과 즉흥연주라는 최소한의 합의조차 안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사진가가 마치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윤성님의 공연을 보러 왔다가
당황한 사회자처럼 보였다.



윤성님의 연주는 끝까지 아름다웠다.
오로라 사진에서 정점을 찍고
길 사진에서 부드럽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선하고 겸손한 말 역시 그다웠다.
마지막 연주를 끝으로 그는 박수와 함께 슬쩍 자리를 떴고
동시에 사진가의 마지막 멘트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폰을 치켜들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공연 시작 전
분명 폰을 꺼달라는 멘트가 나왔었는데
사진가 아직 말하고 있는데
뭐 이리 당당한거지.

그러고보니 이사람들,
처음 윤성님 등장했을때 박수도 없었지
(나 역시 뭐야 왜 아무도 박수를 안치지, 등장할때 원래 한번 치지 않나 어리둥절하며 안치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중간에
알람음 한번 깨톡음 한번도 있었구나
(일일이 신경 곤두세우기에 시간이 아까워
그냥 연주에 더 집중하는 걸로 지나가긴 했지만)


부디
나만 이 모든 면이 조금 불편했던 것이길.

다음번에는
더 맘껏 즐거워만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윤성님의 연주를 만나고 싶다.

이번엔
내가 미숙한 선택을 했던 걸로 해두자

덕분에 디저트처럼 늘 조금만 맛보던 색조를
공연시간내내 즐기는 행운도 있었으니

이렇게 실컷 맛볼줄 모르고 가서 그렇지
나도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사실은 꽤 좋아하는 음색이다.


귀한 시간이었다


다만
다음에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적어도 두개는 예매하자......




페미부터 시작해서 뭐 많이 썼는데 기승전 경제가 문제인거 같다 어쩌지

페미니즘

사실 잘 모른다
최근 몇년 사이 기사화되는 일이 많은 이슈라는 것 정도.
이하는 머릿속으로 이러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정리한 거다

1.
페미니즘

막연히 생각해보자면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차별을 지적하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무너진 균형을 맞추는 방식.

가족, 직장 내 관행과 관련하여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다.

부모의 권위 불균형, 아들딸에 대한 차별, 처가와 시댁에서의 대우, 집안일 배분
상사의 권력이 성적인 제압으로 나타나는 것, 유리천장, 커피타기, 접대, 회식문화 등등

이미 많이들 들어본 문제일 것이다
개인에 따라 나아졌다, 여전하다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위의 상황이 “문제”라는 시선만으로도
남성들에게 자기검열을 요구하는 것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딱히 성차별을 하고 있다는 의식 없이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왔기에 당연히 누려왔던 것일 수 있다
그게 차별이라는 지적(공격)을 당하고
나아가 여성과 그 권리/의무를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남성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사회가 바뀌니 죄인 취급을 받는다
주변 여자들이 줄곧 이런 시선으로 날 보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달리 어떻게 하면 좋을지, 왜 그래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행동이 위축되고 눈치를 살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남성 입장에서는 저항이, 여성 입장에서는 탄압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적어도 위의 문제들이 제기되던 시기에는
(남성 입장에서) 죄인 취급받는게 좀 억울하긴 하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 어쨌든 머리로는 남녀가 평등해야한다고 배워오긴 했으니 가능한 천천히 개선하는게 좋겠지, 정도였던 거 같은데.

문제는
해당 이슈 자체를 넘어
전반적인 삶이 힘들어졌을 때다

먹고사는것만으로도 한계에 다다를때
이성이라든가 변화를 받아들일 능력이 약해진다

사실 변화에 대한 보상도 미약하다
평등의 지향은 여성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 딱히 남성들이 바뀐다고 해서 고마워할게 아니다

(차별당하고 있었다는 의식이 미약하던 여성이라면 별 노력없이 변화한 상황에 묘한 우월감을 느끼고 이를 감추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태생적인 성별로 인한 사회적 압력을 줄이는 것인데, 오히려 남녀 파워게임으로 의식해버리는 것이다)

기존에 누리던 권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남성들의 저항이 거세어진다
그 권리가 정당한지 아닌지보다 “이미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 중요해진다


여성의 입장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탄압을 당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방어”만 하는 “선량한” 입장에 서야 하는가
그래서 바뀌는 것이 있는가
우리의 문제제기가 옳다고 해도 제대로 바뀌는 것이 없다면
그리하여 계속 비슷한 상황으로 희생되는 여성들이 있다면
우리의 “선량함”과 “정당함”은 “위선” 아닌가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방식으로
남성들을 공격해줌으로써
너네가 여성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어 라고 알려줌으로써
더 강력한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폭력은 폭력으로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오래된 격언에 의심이 제기된다
삶이 힘들어져 이성이 약해진 건 마찬가지기에.


2.
온라인이라는 환경이 에너지를 모으면서
상황은 한층 과격해진다

소위 남성 커뮤니티, 여성 커뮤니티 같은.

처음에는 그저 게임정보공유 같은 주제였음에도 특정 성별이 몰리고, 주제 외 일상적인 이야기가 늘다보니 성별커뮤니티처럼 되어간다. 아예 따로 성별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면
말 외에도 억양 표정 몸짓 상대의 됨됨이 등으로
이게 어느정도 믿을 얘기인지 감을 잡을 수 있는데

같은 얘기라도 익명으로 온라인에 올리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특히 특정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글이라면
공감하고 지지해줌으로써 내밀한 감정을 충족할 수 있기에 의심할 이유가 없다.

공감과 지지를 얻을수록 사연은 점점 과격해지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괴물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남성커뮤니티라면
주변 여성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을 넘어
난 여자들을 성폭행에 가까운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다뤄봤지만 괜찮던데? 라는 글에 찬사의 댓글이 달린다든가.
그런걸 무비판적으로 보다보면 자신의 평온하던 일상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자신은 주변 여자들에게 호구당하며 산 거 같고
자신 같은 남자의 고마움을 몰라주는 “여성”들에 대한 불만이 쌓인다
저렇게 행동해도 의외로 괜찮은거 아냐? 라는 위험한 생각이 싹트기도 한다

주변 여성들이 한층 “여성”으로 보인다
개인이 아니라 “여성”으로 보인다
그 사람이 가진 여러 특징 중에 “여성”이라는 요소가 그 사람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여성 커뮤니티라 했을때.
읽기도 버거운 사연들이 넘쳐난다
어디서 다들 이렇게 피흘리며 살고 있는 건지
자신에게 벌어진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거 같은 사건이 매일매일 올라온다

사실 나는 저렇게 끔찍한 일을 당해서 이 커뮤니티에 방문한 게 아닌데
(그냥 별 관련없는 걸 검색하다 들어갈 수도 있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간접체험이 내가 가진 많은 특징 중 “여성”이라는 요소를 강하게 의식하게 만든다
심한 경우 간접체험만으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저런 일을 벌인 남자들은 대체 무슨 괴물인건지
왠지 내 주변에도 태연히 살아가고 있을 거 같다.
평온하던 일상이 위험해 보이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남성”이야, “꼰대”라 불릴 나이야라는 생각이 강화될수록 개인을 보려는 노력과 능력이 줄어든다


단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여중여고 남중남고 나오면
사회에서 이성과의 관계를 제대로 못한다는 말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를 너무 “남성/여성”으로 본다는 것.
아니, 이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쌓인다는 점에서 한층 질이 나쁘다


3.
남성 커뮤니티에 쌓인 독은
대놓고 지지를 받기는 힘들다
남녀평등을 교육받는 시대에
여자를 성폭행해도 된다는 말을 떠들고 다니는건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싶어요 같은 거니까.
그만큼 은밀한 방식으로 퍼져간다

여성 커뮤니티는
사회에서 논의가 가능한 이슈를 제기한다
문제는 이들이 품은 것 역시 독이라는 것

기존에 페미니즘 운동을 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저 에너지가 탐이 나면서도
저들의 과격한 움직임이 반발을 받아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가 줄어드는게 두려울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싸우고 싸우다가 에너지가 고갈되거나
정치꾼들에게 놀아나기 전에
잠깐만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왜 상황이 이 모양인지 말이다

사실 남녀평등이란
남녀 서로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태생적인 특성보다 개성이 존중받기 위한 것.
마치 선천적인 장애가 있어도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말을 끝내는 과정이다

다만 이 과정을
남녀가 서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단순한 파워게임이 일어나고 있는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다각도로 바라보는 노력과 대화가 필요한데
한마디로 섬세한 작업이고 그만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럴 힘이 없다
사는게 너무 팍팍하다
사람을 만날 시간도 기력도 없어
휴대폰 붙잡고 익명의 사람들에게 위로받는 시대다.
자극적인 단물만 빨아도 부족하다


결국, 경제문제인 거다

사랑하던 여자에게 날라차기를 하는 남자도
그걸 익명으로밖에 달리 토로할 곳 없는 여자도
날라차기하는 영상을 관음증 걸린것마냥 클릭하는 사람들도
뭐야 세상이 무서워졌어 우리끼리라도 안전하게 살자라며 엄한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배척하는 사람들도.

모두 경제문제인 거다

생산성이 인정되는 카테고리 내에서
뭐든 본인이 하고싶은걸 일정시간만큼 하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해주는 세상이었다면
과연 저런 일이 일어날까?

단적인 예를 들자면 갑질이라는게 가능할까? 갑질은 을이 때려칠 수 없음이 전제되는 거 아닌가?
하다못해 카페 음료를 주문할 때도 사람들은 좀더 친절해져야만 할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당연히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겐 저마다 살아온 관성이 있으니 모든게 한번에 해결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사회적 관용이랄까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수용력은 커질 것이다

그런 세상은 있을 수 없다고...?

글쎄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경제문제를 해결하라고 있는게 정치 아닌가

결국 현 상황은
경제문제이자 정치문제다

그걸 알기에 언론에서
저렇게 열심히 떠들어대는 거다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이명박근혜를 당선시킨 에너지와
문재인을 당선시키고 지방선거마저 완봉승을 거두게 만든 에너지가
사실은 다르지 않기에.

최장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었고
1만원은 아니지만 최저임금은 매년 느는데.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에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불신의 눈초리에 에너지가 몰리지 않도록.

상대적으로 민주화된 정권이 들어섰을때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터진다

그간 억눌려있던 목소리가
해결을 원하며 터져나오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지 않도록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용도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너무 음모론 같은가

중요한 건 얼핏 사회문제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은 경제문제라는 거다
나아가 정치문제라는 것이고.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데
어딘가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좀더 근본적인 처방에 쓰여야 하는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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