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에서 온 모차르트쟁이들을 만났다 별처럼 만난 사람들

잘츠부르그 오케스트라 솔리스텐 신춘음악회에 다녀왔다
120분 내내 모차르트 곡으로만 구성되는 예술의 전당 공연이었다

공연장 가서 알았지만 연주자 각각이 다른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여서 “솔리스텐”이라는 명칭이 붙은 거란다.

한마디로 드림팀 공연


감상은?
그야말로 봄날이었다
매순간 모든 선율이 아름다웠다

모든 악기가 더 세게 소리낼 수 있지만
가볍게 가볍게
경쾌하고 유려하게
귀를 즐겁게 했다

영화가 즐거울 수도 있고, 드라마나 만화가 즐거울 수도 있고, 사람과의 대화가 즐거울 수도 있지만.

음악으로 즐겁다는 건 이런거구나 싶었다
환희, 라는 표현을 이럴때 쓰는 거구나 했다

아름답게 화음을 이룬다 싶다가도
어느새 한 악기가 쑥 튀어나와 장난을 치고 들어간다
지루할 새 없이 간질어댄다

순간순간 메인이 되는 악기를 눈으로 좇아도 좋고
눈을 감고 들어도 좋고

그렇게 즐기는 사이
내 안에 있는 잠금쇠가 달칵 열려서
평소 봉인해두던 온갖 생각과 감정, 감각이 쏟아져나왔다
음악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120분이 언제 갔나 싶게 지나갔다
깊은 명상이라도 하고 나온듯, 달콤한 낮잠이라도 잔듯 개운하고 고조되었다

사인회도 있어 몇마디 나눌 수 있었는데
쑥스럽지만 영어로 열심히 감상을 전했다
내가 받은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어 생각한 건데
도리어 더 많이 되받은 기분이었다.


클래식은 사실 잘 모른다.
그저 잘츠에서 온 악단이 모차르트 곡만 연주한다는 것이 유일한 기대였다.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온 팀이니까, 모차르트라면 어떤 곡으로든 청중에게 다가서고 호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에 걸맞는 실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과는 굳굳굳.
꼭 뭘 알아야만 즐길 수 있는건 아니구나 느꼈다.
유투브나 라디오로 듣는 것과 실제로 듣는건 천지차이라는 것도.

잘 모르는 예술 분야일수록 수준급의 공연을 현장에서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은 거 같다.

잘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저 몸을 맡길 수 있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막대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거 같다

올해 동장군은 참 끈질기게 버틴다 싶었는데
봄을 기다리던 마음이 모여 모차르트로 돌아온 기분.

아름다운 밤이었다

쿨한 컬링이었다 별처럼 만난 사람들

오늘은 좋은 하루였다

다행히 상담 후유증은 없었다.
지난번처럼 심한 감정 분출로 지치지 않았다

옆자리 주임님과도 나쁘지 않았다
나름 화기애애함을 유지하면서도 어제처럼 너무 많은 수다를 떨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감기 악화됐다고 병원을 다녀오는둥 좀 피곤해보여서일 수도 있겠다

짝사랑 그애와의 대화도 즐거웠다
왠지 기분이 좋아 시종일관 부드럽게 대할 수 있었다

병원도 다녀왔고
울집 냥님 병원갈 예약도 순조로웠고
내친김에 헤어샵도 예약했다

필라테스는 이미 알아놨는데, 수술 후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전까진 혼자 힘내야지


이것저것 할일은 쌓였지만
오늘 여자컬링 한일전이래서, 과감히 전부 스킵.

저녁먹고 다시 사무실을 갈까도 생각했지만(울집이 인터넷 불모지라..)
그냥 집에서 편하게 LTE로 실시간 영상을 봤다

한국도 일본도 너무 잘해서 즐겁게 봤다
한국은 세컨과 서드가 연달아 신기어린 샷을 뽑아냈고(당구하는줄...)
일본은 서드와 스킵(주장)이 잘해줬다. 특히 스킵은끝까지 우리팀을 몰아갔다.

사실 지난번 한일전 패인이 9, 10엔드에서 무너졌다는 거였다
코치가 말했듯 한일전이라는 압박감이 있었다면, 이번에도 한일전임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었을텐데.

보면서 참 좋았던게
압박감 때문에 졌다면, 압박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자는 쿨한 태도를 보였다는 거다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그런거 말고.


일단 시종일관 첫샷부터 센터에 넣어놓고 시작하는 공격적인 방식으로 선수를 잡는 쪽을 택했다

물론 해설을 듣고 있으면 우리 전략에 일본이 내내 밀렸다는 느낌이지만,
초반에 3점을 내주고 계속 수비하는 구도였던 일본은 대량 득점 없이도 동점까지 따라붙었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수세로 가냐 공세로 가냐는 전략적 선택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따라붙을때 더 힘낼 수도 있는 거니까.

그치만 우리팀은 정신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세를 택한 거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득점이 가능한 상황에서 10엔드 후공을 위해 0-0으로 갔다

일본팀이 이 샷을 칠때 되게 좋아한 것으로 봐서, 대량 득점을 노려 아예 멀리 달아나는 전략도 가능했을 거다

사실 당장의 부담을 떨쳐내자면 그 방법도 있었을텐데, 울 팀은 마지막 순간을 바라봤다

지난번같이 되서는 안돼, 이겨내야 해라는 식의 무대뽀식, 군대식 방법이 아니라

지난번보다 압박이 적을 상황을 만들면 되잖아 라는 유연하고 쿨한 면모.


결국 10엔드 마지막 샷은 원하는 위치에 멈추지 않았지만, 11엔드 마지막 샷은 원하는 곳에 멈췄다


사실 울팀 스킵이 전략 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지만 샷 면에서는 조금 흔들리는 감이 있었다

물론 성공률은 좋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울팀 다른 선수들이 워낙 잘해주다보니
그에 비해 결정적일때 필요한 만큼 딱, 이란 느낌은 부족했던 거 같다

원래 조력자보다 그걸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더 부담되기는 하니까.

주변에서 그걸 나눠주려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스킵이 뭔가 어렵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면 슈터가 과감하게 “그냥 째버릴까요”라는 식으로 툭 던지기도 하고

스킵 또한 자기가 칠 어려운 샷을 논의하면서 “내가 친게 여기로 들어오면 최악이라고 해도 이정도일 거잖아”라는 식으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고.

좋은 팀 아닌가

세컨이니 서드니 하는 용어에서 느껴지는 서열 감각이 없었다

이번에 여자 팀추월팀이 보여준 어처구니 없는 모습과는 하늘 땅 차이다.

물론 성적도 성적이지만
사람들이 올림픽에서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지 참 극명하게 보여준 거 같다

반성해라 관계자들아
담번에도 의성 자매 같은 팀 더 보고 싶으니까.

마지막 한 경기 남은게 아쉽다
담 올림픽 전까지 컬링 공부나 열심히 해놔야겠다

ARM 아니래 어쩌지

당분간 병원이라면 정말 사양이다!!!!

넘 좋다

아직 미심쩍은 맘이 남아있긴 하지만
암 아니라니까. 그걸로 됐다 싶다

병원 가는길에 이런저런 말을 하시던 엄마가 병원 들어서자마자 입을 다무셨다
한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우릴 보고 간호사가 암 아니니까 점심 먹고 오라고 했다
순간 엄마가 기쁨의 비명을 지르시는데, 나보다 더 많이 긴장하셨구나 싶었다

믿기 힘들지만 가장 듣고싶었던 얘기여서
되려 실감이 안났다

일단 의사 말 들어보자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기대와 초조와 불안감이 섞여 빙글빙글 돌았다

진료실에서 의사 말을 들으니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물론 수술해서 꺼낸 걸 검사해봐야 확정인 거지만, 하면서도 해당 과를 나오자마자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인생의 시계바늘이 비로소 다시 움직이는 기분.
비유가 아니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나를 두고 지나치던 세상 모든 것들이
다시 나를 돌아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메종 드 히미코(네타/스포일러 주의) 오늘 만난 책

아빠가 커밍아웃하고 나가버렸는데(참고로 히미코가 아빠 예명이다) 몇십 년이 지나 말기 암 선고를 받았고, 자신이 차린 게이 양로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감독이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암 얘기나 게이 얘기가 나오는 영화인줄은 모르고 샀는데.
충동구매가 이래서 무섭다

1.
대체로 평이하게 봤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엄마도 암투병으로 돌아가셨고, 딸은 병치레로 빚더미에 앉았다
아빠에게 버려져 엄마가 이렇게 되었다는 원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찾는 엄마의 모습에 사무쳤을 마음은 수긍이 간다

그럼에도 세상 외톨이로 살아가던 딸은
게이라는 gig 사이에 있으면서 점차 마음을 열었다.
세상 혼자 살아가던 사람들이 함께가 될때 느끼는 평안함도 알겠다.

그러나 그 양로원을 지키기 위해 몸을 판다든가 무리하는 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였지 않은가
함께여서 즐거울 순 있지만, 결국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는걸 누구보다 절실히 알아왔을텐데.
양로원을 떠나야 할 순간이 다가오는걸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이상했다

마지막에 나름 밝은 분위기로 끝나는데
문제가 되던 양로원 재정이 결국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뭔가가 문제로 보이면
그게 자신의 문제인거라 하던데.

어딘가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내 문제가 이렇게 나타나는건가 싶기도 하다
안식처는 늘 있었지만, 떠나야 한다고 납득하면 망설이지 않았다

미련은 미련하다


2.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클럽에서 일반 지인에게 여장을 들켜 곤욕을 치르는데
사과하라며 악을 쓰는 딸의 모습에 오다기리 죠(남주 게이)는 오히려 따뜻하게 웃어버리는 거였다

화난 딸을 스테이지로 데려가 함께 춤을 춘다

모욕당한 게이 아재도 다른 게이 아재들과 함께 춤춘다

다같이 가게를 박차고 나가야 할거 같은데
마치 그런 일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자신들에 대한 박해를 받아들인다.

그건 저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말 강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내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웃어넘기며 사는 자세랄까

아름다웠다


3.
한가지 뜨악했던 건
클럽 다녀오고 나서 둘이 섹스를 하려 했던 것

인간 좋아하는데 남녀가 어딨어 그럴수 있지 한단계 더 자유롭게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네 하면서도
여잔데? 자기 애인 딸인데? 하며 조마조마했다

결국

게이라(거기다 네코라)
좋아하는 여자랑 하질 못하네

라는 식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게이라 여자랑 못한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지만
조마조마했다는 거 자체가 내 바닥을 보여준 거니

할말 없음


암튼 중고 DVD 랜덤으로 질렀는데
뜻밖에 재밌게 봤다
나머지도 기대해 봐도 좋을듯

설, 그리고 멀미 어쩌지

설이라 온가족이 모였다
끊임없이 티브이 소리가 난다
말소리 음식 만드는 소리 치우는 소리

이렇게 북적일 때면
스스로를 닫고 있는 기분이 든다
수더분하게 있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숨긴다.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뭘 먹고 있는지 맛있는지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그러다 잠깐 화장실을 들르면
차단된 공간에 혼자가 되면 멀미가 난다

꽁꽁 숨어 있던 내가 잠시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누르고 있던 생각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이기도 하다

겨우 정신이 든 기분

이제 곧 올라가니까.
단란한 가족시간도 끝난다
자신만의 시간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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